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틸슨 브리또 (문단 편집) ==== [[SK 와이번스]] 1기 시절 ==== [[2000년]] [[디트로이트 타이거스]] 마이너에서 뛰다가 [[쌍방울 레이더스]]가 싼 맛에 뽑았던 [[헨슬리 뮬렌]](現 [[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]] 타격코치, 2013 WBC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)과 혼즈의 대체 용병으로[* 쌍방울 시절 뽑았던 탓에 계약금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한다. 결국 [[SK 와이번스]]에서 몇 경기 뛰지 못하고 퇴출.] [[SK 와이번스]]의 유니폼을 입었다. SK에 합류하자마자 주전 유격수 뛰며 암울하기 짝이 없던 창단 초기의 SK에 활력을 불어넣었다.[* 입단 당시 에피소드. 5월초 처음 브리또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당시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급한 [[SK 와이번스]] 사정상 입국 몇 시간만에 [[수원시|수]][[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|원]]으로 가서 [[현대 유니콘스|현대]]와의 경기를 뛰어야 했는데 그 경기서 3점홈런을 뽑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이것이 브리또의 활약의 시작이었다.] 사실상 브리또가 SK 공격력의 2/3을 책임졌을 정도. 최종 성적은 103게임에 출장해 타율 0.338 15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. 이 때 시즌 막판까지 [[현대 유니콘스]]의 [[박종호(1973)|박종호]]와 타격왕 경쟁을 벌였는데, 10월 12일 현대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현대 [[김재박]] 감독은 타격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박종호를 출장시키지 않았고 현대 투수들은 노골적으로 브리또와의 승부를 피했다. 그리고 더블헤더 2차전, 브리또가 안타를 때려낸 다음 타석에서 현대 투수 [[박장희]]는 고의성 짙은 볼을 던져 브리또의 다리를 맞추기에 이른다. 이에 분노가 폭발한 브리또는 "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고 만다"라면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지 않은 채 그대로 도미니카로 출국해 버렸다.[* 물론 구단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출국한 것은 아니고,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[[강병철]] 감독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. 참고로 박장희는 다음 타자인 [[장용대]]의 직선타구에 얼굴을 강타당하며 응급실로 실려갔고, 그 후유증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된다.] 보통 타격왕 경쟁 논란에서 자팀 선수를 출장시키지 않거나 경쟁자를 고의사구로 거르는 경우는 많아도, 경쟁자에게 대놓고 빈볼을 날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과연 브리또가 한국인 선수였다면 빈볼을 던질 수 있었겠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. 이 사건으로 SK 팬들은 브리또가 한국프로야구에 회의를 느껴 재계약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, 그래도 재계약에는 성공해 [[2001년]]에도 SK에서 뛰었고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.320 22홈런 80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. 그러나 그 해 [[KBO 골든글러브]]는 현대의 [[박진만]]이 탔는데, 타격성적은 정확도에서 브리또의 우위였고 무엇보다 9번을 주로 쳤던 박진만과 달리 풀타임 4번타자였다는 점에서 가산점 요소가 있었다. 물론 박진만도 3할과 20홈런을 돌파하는 등 대단히 우수한 시즌이었고, 팀 성적과 안정적인 수비,[* 다만 이미지와 달리 이 해의 박진만, 브리또는 실책을 각각 22개, 23개나 기록하는 등 수비가 조금 불안정한 편이었다.] 여기에 외국인 선수에 대한 국내 스포츠 기자들의 텃세 등이 더해졌던 것으로 해석된다. 나머지 구단 팀들은 배출할 만한 인재들이 그나마 [[김민재(내야수)|김민재]], [[류지현(야구)|유지현]]인데 공격력이 너무 밀렸던 게 단점으로 지적된 듯. 사실 김민재의 경우는 그 해 공격 성적은 본인의 평소 성적을 감안하면 괜찮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해 부상으로 규정타석조차 채우지조차 못했기에 규정타석 3할에 홈런 20개를 채운 박진만에게 들이밀 성적이 못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